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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서울대 필독서 no.7] 고향 -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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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그는 누구인가?

 

작가 리기영(李箕永)은 1895년 5월 29일(음력 5월 6일) 충남 아산군 배방면 화룡리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민촌(民村)이다.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원천으로서의 유년기 체험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관 출신이면서 개화사상가였던 그의 아버지 이민창과의 관계 및 서모를 통해 읽게 된 고대소설들과 신소설,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식민지 농촌으로서의 천안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환경들(특히 조혼풍습같은 것)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리기영 문학의 본질은 전근대적인 삶의 영역으로부터 어떻게 근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근대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작가와는 달리 그의 근대 체험은 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출아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가출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몇 차례 근대 세계에 대한 진입을 시도하다가 1922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도일(渡日)에 성공하고, 동경영어정치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곧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영향으로 귀국하고 만다.

그러나 일년 남짓한 이 짧은 시간들은 작가 리기영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놓는다. 이 시기 동안 그는 주로 문학을 통해서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포석 조명희를 사귀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파스큘라와 염군사의 연합단체인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약칭 카프)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은 조명희 - 최승일 - 리기영 - 한설야로 이어지는 일련의 관계들을 떠나서는 설명하기 힘든데 그 중에서도 조명희는 리기영의 초기소설들은 물론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4월 《개벽》에 「옵바의 비밀편지」란 어설픈 단편이 3등에 당선되면서 그는 문단에 나서는데, 곧 카프 소설에 있어서 중심적이고도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시작된 그의 소설 창작은 이후에 카프 소설 창작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특히 그를 소설 창작 및 카프라는 집단에로, 나아가 《조선지광》에 일자리까지 알선해 준 조명희가 1928년 무렵 일제의 탄압 등을 이유로 불쑥 러시아로 떠나면서, 그는 카프 내에서 최연장자로서의 자리에 놓이게 되며 이를 통해 그는 민족주의 진영의 거두 이광수와 맞서는 위치에 서고 있다. 이 시기 리기영 소설의 계보는 「농부 정도룡」에서 「홍수」를 거쳐 장편 『고향』에 이른다. 한편 이 소설들 속에는 이미 리기영 소설의 원형적 세계가 깃들여져 있는데 그것은 곧 경험 중심주의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짧게 요약하자면 여러 가지 이유들(가출아적 성격, 연장자 의식 등) 때문에 그의 근대성 인식 혹은 소설쓰기가 당대의 관념성을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 될 것이다. 『고향』은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가져다주는데 이 소설 발표 직후 카프 해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전주사건이 터지고 만다.

이 ‘전주사건’은 그에게 깊은 정신적인 그늘을 남기는데, 강화된 일제의 탄압 속에서 그가 『인간수업(人間修業)』(1936), 『신개지(新開地)』, 『대지의 아들』(1939), 『봄』(1940)에 이르는 소설들을 써낼 수 있게 하는 숨은 힘은 바로 그 깊은 정신적인 상흔이라 할 수 있다. 소설 『고향』을 통해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그가 경험했던 행복감을 지속시켜 보고자 하는 끊임없는 훼손된 욕망을 떠나서 그의 전향소설들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한편 일제 말기에 잠시 철원으로 소개해 있던 그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하는데 바로 그가 놓여 있던 공간 때문에 ‘서울’과 ‘평양’이라는 두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가는 해방공간의 모습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관망할 수 있었던 듯하다. 물론 그의 북한 선택은 일찍이 소설 『고향』을 본떠서, 『황혼』이라는 소설 창작으로 나아간 한설야라는 존재가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리기영ㆍ한설야가 림화ㆍ리태준 등이 주도해서 조직한 ‘조선문학건설본부’에 반대하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건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1945년 무렵 두 차례에 걸쳐 서울을 방문하는 그들에게서는, 이미 ‘재북파(在北派)’로서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기영은 1946년 철원에서 다소 관념적인 단막극 「해방」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새로 형성되는 북한문학의 중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철원으로부터 평양으로 거처를 옮겨갔으며 그해 7월 북조선 문예총의 기관지인 《문화전선》 창간호에 북한의 토지개혁을 다룬 단편 「개벽」을 발표하고 있다.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이 소설이 보여준 세계는 단순히 이념지향성을 보이기 보다는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던 경험 중심주의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까닭에 그의 소설 중에서 백미로 꼽힌다. 이 해부터 1982년까지 그가 조소친선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는 점만을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확고부동한 자리를 북한문학 속에 확보할 수 있었는가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948년부터 단편 「개벽」 속에서 그린 세계를 새로운 이념을 통해 재무장시킨 장편 『땅』의 창작에 나서는데 북한의 여러 가지 이념적인 장치들을 그의 소설 속에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남로당 계열의 문인들이 숙청되고, 그를 평양에로 이끌었던 한설야마저 숙청되는 시기에 어떻게 유독 리기영만이 그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은 현실을 대하는 그의 자세와 노회함을 떠나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1950년 4월 소설집 『농막선생』을 내기도 한 그는 6ㆍ25 이후인 1954년부터 그의 창작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장편 『두만강』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소설은 3부로 짜여진 것으로 여기서 우리는 리기영의 역사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는 혁명적인 두 세대를 설정하고 있는데 아버지 곰손의 세계와 아들 씨동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는 남한 출신의 농부이며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다가 서서히 북쪽으로 옮겨 간다. 그를 통해서 그려지는 세계는 이미 「농부 정도룡」이나 『고향』에서 익숙해진 곳이다. 한편 아들 씨동의 존재는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과 함께 자연스럽게 만주 동북지방을 무대로 펼쳐지는 반일의병 운동과 부르조와 민족운동, 양반계급의 퇴폐상과 일제의 폭력성에 대한 인식으로 가닿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3부에서는 마침내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에 이르는 광범위한 세계를 형상화해내고 있는 것이다.

리기영은 향년 90세로 사망하는 1984년 8월 9일까지 북한문단의 중심에 놓여 있으면서 꾸준한 창작을 해낸 작가였다. 그는 월북 직후 1945년 9월 평양의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 결성에 주역을 맡았다. 이듬해 5월에 발족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대위원장으로 뽑혔다. 1946년부터 1958년 사이 소련ㆍ동독ㆍ체코 등지를 수차 방문해서 친선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1957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1958년 조ㆍ소친선협회위원장 등을 두루 거쳐서 1972년 이후 사망 당시까지 북한의 문예총(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월북 후에 쓴 주요 작품만도 위에서 설명한 『땅』과 『두만강』 및 『한 녀성의 운명』(1963 1965), 『조국』(1967), 『력사의 새벽길』(1972, 상권) 등의 장편소설을 남긴 채 그는 지금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능에 묻혔는데 그후 유고집 『태양을 따라』가 나와 있다.

고향

1933년 11월부터 다음해 9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기영의 장편소설.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20년대 말 원터 마을, 동경 유학생이던 김희준이 학자금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소작인으로 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농민 봉사, 계몽 활동을 통하여 농민 지도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그를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동네 마름인 안승학과 대결해 나간다.

마름 안승학은 그의 본부인을 서울로 보내 자식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첩 '숙자'와 함께 산다. 안승학과 '숙자'는 딸 '갑숙'이를 이씨 문중으로 시집보내려 하다가 '갑숙'과 '경호'와의 관계를 알고 앓아 눕는다. 왜냐 하면, '경호'는 읍내의 상인인 권상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구장집 머슴 곽 첨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갑숙'이는 가출하여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한다. 그녀는 '옥희'라는 가명을 쓴다.

풍년이 들었으나 소작료와 빚진 것을 제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갑숙'이와 친했던 '경호'는 집을 나와 생부를 찾고 역시 공장에 취직한다.

수재(水災)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농사를 망친다. 김희준을 중심으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줄 것을 요구하나, 안승학은 이를 거절한다. 이때 공장에서도 '갑숙'(옥희)을 지도자로 한 노동 쟁의가 벌어지며, 김희준은 이를 돕는다. '갑숙'이는 소작인을 괴롭히는 아버지에 반대하여 김희준과 힘을 합친다. 김희준을 비롯한 농민들은 끝내 안승학의 양보를 얻어낸다. 그리고 김희준과 갑숙이는 이성간의 애정을 초월하여 동지로서의 사랑을 확인한다.

 

책 속 문장

 

"이태 동안 두레를 내서 이웃 간에 친목이 두터운 마을 사람들은 불의의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전 같으면 앞뒷집에서 굶어도 서로 모르는 척하고 또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는데 그것은 그들의 처지가 서로 절박하여 미처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뿐더러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인심은 부지중 그렇게만 만들어놓았던 것인데 지금은 굶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려는 훗훗한 인간의 훈김이 떠돌았다. 두 되만 있어도 서로 꾸어 먹고 한 푼이라도 남의 사정을 보려 들었다.

 

그것은 누구를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자기네에게도 유익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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